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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응: 인문학적 시각 예수냐 우상이냐 | 잊혀진 신사참배 강요 거부 사건의 재발견 | 동아기독교 침례교 순교자를 기억하라

 



김대응, 인문학적 시각, 예수냐 우상이냐

 

민경배(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이번에 시인이시오 역사학자인 김 대응 박사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의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형극(荊棘) 역사에 대한 아주 놀랄만한 대본을 상재(上梓)하시었습니다.

본서는 한국교회사의 방법론에 있어서 아주 혁신적인 최초의 그리고 독특한 시각을 설정하고 역사를 투시하고 서술하는 시도를 수행하시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놀랄만한 호소력으로 역사의 실체를 독자들 몸가에 절묘(絶妙)하게 다가서게 하였고, 마침내 지난 역사의 실상과 그 의미에 대한 실사적(實寫的) 관철(貫徹)에 이를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가게 하는 데에 그 문필(文筆)의 능()을 다 하시었습니다.

첫눈에 우리는 본서의 혁신적인 파격적인 타이틀에 눈이 갑니다. 교회 역사서인데 <인문학적(人文學的) 시각>, 곧 영역(英譯)하면 <Humanistic View Point>인데 인간적으로 역사를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유한하고 감정에 시달리고 연약하고 변화무쌍한, 그러나 생명력 넘치고 의기충천(意氣衝天)하는 그런 인간의 입장에서 일제 치하 신사참배 저항의 역사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 순교사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를 교리적으로 교회적으로 신학적으로 볼 때의 개념적 이해 범위, 곧 도덕적 이성적 사회적 구도, 그런 데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황 그 시각에서 한국기독교 그 일제하의 수난을 피부로 느끼도록 구도화하였다는 뜻입니다. 인간(人間) 신앙인이 일제(日帝)라고 하는 거대 기구의 혹독한 현실의 신사참배 강압에서 견뎌내고 승리하거나 굴복하는 과정을 보다 더 적나라(赤裸裸)하게 소박하게 대본화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것을 실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역사가 희곡화(戱曲化)해서 마침내 시문학적(詩文學的) 실존적 서술로 대본화(臺本化)하는 형태로 가기 때문에 문향(文香), 문필(文筆)의 차원은 훨씬 체감(體感)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서술은 해석상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새로운 구심점과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서기 마련입니다. 이때 비로소 저자와 독자와의 상징적 상호행위의 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 치하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헌법에 의해서 반국가적 조직으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1868년 일제 헌법을 기초(起草)할 때 구미(歐美) 국가들이 그 헌법 전문(前文)에 기독교를 그 기축(機軸)으로 한 것을 본 따서, 일본 제국헌법 전문에는 그 기축으로 신사(神社)와 천황제를 대치(代置)해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당시 일제에게는 신사(神社)와 천황(天皇)은 그들 국체(國體)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신사참배 반대는 일제치하 그 자체가 이미 반()헌법, ()국가, 히꼬꾸밍(非國民), 후떼이센징(不逞鮮人), 그런 구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사참배에 관련된 일제의 한국 기독교 및 종교 탄압과 해체 과정은 1911.6.의 사찰령(사찰(寺刹令)령으로 불교계 억압, 1936.5.26의 한국 천주교의 굴복, 1938.9.3의 감리교회, 1938. 9.10의 한국 장로교, 1942.7.의 성공회, 1943.12.28.의 안식교, 1943.12.29의 성결교, 1944의 구세군, 그리고 1944.5.10의 침례교의 교단적 거부, 교단 해체, 32인 구속, 1인 순교의 참화였습니다. 한국 침례교회만이 불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해체당하는 참화를 겪었습니다.

본서는 일제 한국통치가 신사참배를 기축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직시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통치는 당장 기독교와의 생사 대결을 의미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습니다. 이것을 인문학적으로 보았을 때 일제 한국통치의 실상과 그 생태는 실상 처음부터 기독교와의 생사 결전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 한국통치에 있어서의 우상의 문제, 국가와 종교, 신사참배의 실상, 일제의 한국 식민 통치, 국체와 신사, 일본 기독교회 처신, 그리고 침례교회 최후까지의 항일 저항과 투쟁 그리고 그 해체, 이런 절묘한 구도의 연구를 위해 저자는 저작물 293, 기타 자료가 20여 권 그리고 일제 당시의 재판기록물 발굴에 이르기까지 원근 자료, 이렇게까지 섭렵(涉獵)에 정진하여 마침내 이런 거대저서를 상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쓸 때 밀려드는 인간적인 격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일제 치하 한국 기독교인들이 거쳐 간 아픔과 수난, 타협이나 은거, 저항과 투쟁, 그런 형극의 역사를 써 나갔다는 것은 시종 감격에 치밀려 마지막에 붓을 놓을 때까지 아플세라, 그 솟구치는 격정(激情)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 역사가 계속, 끊임없이, 심금을 울리는 까닭입니다. 가슴을 메이게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이 저서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극한의 시련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이만큼 붙들고 나갈 수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드높은 깃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까지 갈 수 있었구나 라고 하는 환호와 확신에 이끌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꺾인 한 우리들의 연약함이, 이 역사를 보면서, 계속 수치로 엄습하는 것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 다 그렇게까지 가라고 고도화(高度化)한 신앙에 등이 밀려지는 까닭인데, 본서가 바로 그 정도(正道)의 확고한 헌신을 다짐하는 서약의 날을 당겨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의(大義)와 풍모(風貌)를 나란히 갖춘 저서를 세계문고(文庫) 서가(書架)에 올리신 저자에게 만강(滿腔)의 찬하를 올리면서 무사(蕪辭)로나마 찬하 치사(致謝)의 글을 올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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