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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독후기] 이성교 시인의 「迎日灣을 바라보며」
이성교 시인의 시가 영일만에서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팔팔한 생물같이 가슴으로 파도쳐 온다
이성교 米壽기념시집 「迎日灣을 바라보며」를 받았다.
2019년 08월 06일 오후 우체통에 꽂힌 한권의 책을 꺼내었다. 순간,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성교 선생님의 책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아내에게 책을 가지고 달려갔다.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아니 사실은 잊고 지낸 적이 없다. 그것은 이 선생님과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선생님과 만난 것은 2011년도 가을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 두 번째 시집 발문을 부탁하기 위해 만났었다. 같은 해 12월에 「폭풍속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제2시집이 출판되었다. 그 후로는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지만 이 선생님의 아들은 같은 교단 목사로써 호형호제하며 잘 지내오고 있고, 간혹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들과 바로 오늘 오전에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9년 만의 소식을 「월간문학」을 통해 접했다. 2019년 8월호에 이달의 신작으로 내 시(“씨앗 하나”, p.81.)가 실렸고, 책을 읽다가 “이 시대의 창작 산실”(p.52.)에 이성교 시인의 ‘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이 인연이 있으면 이렇게 한 잡지에서 다시 나란히 만날 수도 있구나 하는 전율이 느껴졌다.
이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이 선생님의 아들을 통하여 내 시집의 발문을 부탁하러 만났을 때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발문을 주시면서 함께 나누던 시적 교류에 대한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강원도 고향지기故鄕知己로써의 친근함은 더했다. 이 선생님은 강원도 삼척이면서 강릉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강원도 평창이다. 평창과 강릉을 오고가려면 대화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을 이용해야만 했다. 대화에는 이 선생님이 아는 분들이 있었고, 나도 동시에 아는 분들이 있어서 이야기 꽃이 만발하기도 했었다. 또한 평창은 이효석 소설가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다. 봉평과 대화장 그리고 평창강은 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 선생님이 작품해설에서 작고한 유재용 소설가의 이야기와 작고한 박재삼 시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의 보물 상자를 꺼내어 보는 것과 같았다. 유재용 작가가 나의 첫 시집 출판 기념회에서 한 이야기를 통하여 그분의 속내를 처음 알았다.
“제가 시를 전공했다면 기꺼이 직접 지도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가슴 속에서 우러났지만 저는 소설을 전공한 터여서 큰 시인 박재삼 시인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김대응 청년은 그때부터 지금은 작고한 박재삼 시인에게 시를 사사했습니다. 그러니까 김대응 시인의 시 수업은 적어도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녔습니다. 돌이켜보면 김대응 청년의 상경은 목회자보다 시인이 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표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임재해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김대응 청년을 미래의 목회자로 선택하시고, 교육시키고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말입니다.”(「폭풍속의 기도」, p. 112.)
“위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김대응 시인은 50년대 서정 시인으로 큰 이름을 떨치던 고 박재삼 시인에게 사사하게 되었다. 박재삼 시인과 김대응 시인의 만남은 우선 다 같이 시골 태생이고 향토적 정서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맥이 통했을 런지 모른다.”(「폭풍속의 기도」, p. 112).
이 선생님의 작품해설은 위 두 선생님의 정서적인 맥락과 연을 같이 한다. 또한 이 선생님의 시적 향취도 나와 같은 향을 내고 있음을 물씬 느끼고 있다. 이성교 시인의 향토적 정서와 기독교적인 정서의 동질감이 이성교 시인과도 통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성장하여 온 배경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을지라도 통하여 시적 향취는 한 곳을 향하고 있다고 본다.
이 선생님의 시집 「영일만을 바라보며」는 그 제목에서 느끼는 어떤 감회가 있기도 하다. 영일만을 바라보는 창窓과 같은 바다 냄새가 나는 표지화를 음미하면서 대표 시인 ‘영일만을 바라보며’를 읽는다. 마치 내가 영일만에 서있는 것과 같은 동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웬일일까.
날마다
바라뵈는 영일만
세월이 지난 후
얼마나 그리웠길래
영일 반도 배를 쑥
내밀고있는가
날좋은 날 긴몸뚱아리
하얗게 웃으며 손짓한다
지난 날 6.25때 피난살이
쓰린 이야기가
바다속에서 떠오른다
그때에 구룡포의 속알맹이가
다 펼쳐져
물고기들이
시퍼렇게 뛰놀고 있다
눈을 뜨면
눈을 더 크게 뜨면
길게 돌아간 그해안에
파도가 하얗게 인다
날마다
그리움을 안겨주는 영일만
오늘도 길게 가슴에 와안긴다
-‘영일만을 바라보며’ 전문 -
이 시집에는 86편의 질 좋은 시들이 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중에 나에게 마음 한 자리 다가오는 한 편시 “동명항”이다. 이 동명항에는 몇 번 가보았기에 그 감회가 느껴진다.
하도 사연이 많아
등대는 잠잘 날이 없었다
그저 눈만 깜박이며
무엇을 전했다
파랗게 이는 파도에
함경도 사람들의 눈물이 묻어있다
한밤중이면
연금정에서 울리는 소리
바다를 잠잠케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은 아바이마을
환한 아침해를 맞고
희망에 차있다
날마다 귀한 음식으로
그날이 올 때까지
장날을 이루고 있다
- ‘동명항’ 전문 -
사연이 많고 많은 항구의 기다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연이 많은 이들이 항구에 살고 있다. 그것은 항구만 에서일까.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서든지 사연은 차곡차곡 쌓여있다. 한 밤중과 같은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소망이 있다. 그것이 살아갈 존재의 이유이고 희망이다. 등대가 있는 항구는 희망이 있듯이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 그것이 동명 항에서는 더 절감되는 것이다. 항구에 있는 사연은 곧 소망으로 변하기를 기대한 이성교 시인의 항구, 우리가 함께 서있는 곳이 그 소망의 항구같이 여겨진다.
이 선생님의 미수는 88세다. 시편 기자는 시편 90편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하고 인생의 빠름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살아온 생애의 자취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인생의 연수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이 시편 기자의 시는 오고 오는 인생에게 한 편의 시로써 인생에게 교훈과 이정표를 제공해 주는 시의 열매를 시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이 선생님의 세월의 연수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한 그 세월의 선을 넘어 팔팔하게 미수에 질 좋은 시의 열매를 맺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이 선생님의 시가 영일만에서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팔팔한 생물같이 가슴으로 파도쳐 온다. 이 선생님의 영혼과 육신 그리고 믿음의 항해가 천국의 항구에 도달할 때까지 생동하시기를 후학 시인으로써 또 목사로써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 김대응 시인
1. 월간 「스토리문학」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4년 6월 창간호)
2. 약력: 강원 평창 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구로지부회원, 기독교한국침례회 예수향기교회 담임목사, 한국침례교회역사연구회 회장. 침례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D.Min.) &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D.Min.
3. 시집: 「너에게로 가는 마음의 기차」, 「폭풍 속의 기도」 □저서: 「내 인생을 바꾼 성서 속 23가지 지혜」, 「청년대학부 필생전략」 □공저: 「한국시인 대표작1」, 「한국시인 사랑시1」 「2007 역사연감」 외 다수
이성교 선생님은 몇년전 우리 구로문학 초대시에 모셨던 친근하고 선비적인 시인이신데 김대응 시인과 그런 인연이 있다니 인연의 고리는 참 특별하군요. 영일만을 바라보며 저도 김대응 시인의 독후기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인연이란 참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만나는 가 봅니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은 깨닫지 못함이기 때문인가 하기도 합니다. 항상 깨어서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인 것 같습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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