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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다는 것은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가치價値



[김대응칼럼 8]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가치價値

Believing in Jesus is a lasting and reliable value.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야할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질되는 거짓이고, 풍설이며 생명을 떠나 죽음의 길로 유혹하고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듯이 죄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고,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기다리는 것은 사망 밖에 없다. 

Believing in Jesus is a historical fact, truth, and life, unchanged from yesterday, today or tomorrow. This world, where those who believe in Jesus must live, is a lie that constantly degenerates, a rumor, and tempts people away from life to the path of death. There is no sin in the world, as there is no man who is not guilty of dust. Those who live in sin have to walk, and the only thing waiting on the dead end of their lives is death.

인생의 수고하고, 고단한 인생의 마지막 출구는 시커먼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사망의 지옥의 입구인 무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은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사는 동안에 허물과 죄로 인하여 열매를 맺은 것은 지옥으로 가는 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이 너무 멀리 있다고 여기고 허물과 죄와 부정을 밥 먹듯이 하며 마지막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길을 잘못 들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종말의 시간을 맞이한다. 돌아설 기회조차 없다. 그 길이 인생이 걸어가는 길이다. 

The last exit from life's painstaking, arduous life is just a grave waiting, the entrance to the hell of death, where the black hole opens its mouth. This is an inevitable path for a man. The fruit of guilt and sin during one's lifetime is bound to be the way to hell. But when people think that the road is too far away, and they eat up their sins, their sins and their injustice, and realize that they are wrong on the threshold of their last death, they face a time of too late. I don't even have a chance to turn around. That's the way life is going.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생이 사망의 길에 이르지 않도록 미리 예비해주는 생명의 길이다. 그냥 주어진 인생의 길로 가면 자연스럽게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Believing in Jesus is a way of life that prepares life in advance so that it does not lead to death. It's just a warning that if you go down a given path of life, you will naturally go down the path of death.

예수 믿으라고 끊임없이 권고하는 것은 지금 예수를 믿지 않고 걸어가면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의 절벽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절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전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인 것처럼 흘려버리고 있다. 

The constant exhortation to believe Jesus is because if you walk without believing him now, what awaits you at the end of the road is a cry to let you know that it is a cliff of hell. But people do not listen to the preachers who ask them to believe him, and they are spilling away as if it were the lie of a shepherd boy.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도자들은 전한다. 전도자들은 양치기 소년이 아닌 생명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꼭 듣고 예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허물과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돌아오라! 예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면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Whether you listen to it or not, the conductors tell you. The preachers are not the shepherd boy but the sound of life. He who has ears to listen to is eager to hear and return to Jesus, and offers a chance to undo his sins and sins. Come back! Come back to Jesus! It is a reminder that when you return, you will be able to escape from the path of guilt and sin and take a new path.

그냥 태어난 길로 가면 죽음의 길의 절벽에 이르고,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길로 가면 생명의 길로 천국에 이른다는 것을 소리치는 것이다. 듣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며, 안 듣는 자는 멸망에 이를 것이다. 자기 인생의 책임은 자신 스스로에게 있다. 좋은 소식을 듣는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칭하게 될 것이며, 좋은 소식을 거부하는 자는 진노의 자녀로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They say, "If you are born, you will reach the cliff of the path of death, and if you turn around and go on a new path, you will reach heaven." He who hears will be saved, and he who does not hear will be destroyed. The responsibility of one's life rests with oneself. For those who hear good news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those who refuse good news will not be protected as children of wrath.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가치관은 그 시대의 조류마다 변화무쌍하여 신뢰할 수 없지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가치관은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의 생수이기 때문이다.

To believe Jesus means not to follow the customs of the world and follow the values of the world. For the values of the world are transformative and unreliable for each bird of its time, but the values of life in Jesus are eternal life-sa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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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를 사용하였습니다.
Note: Translating Korean into English used Naver translator Pap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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