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예수 이름으로 먹고 산다




[김대응칼럼 5]

예수 이름으로 먹고 산다

live on in the name of Jesus.



예수 믿으면 떡이 나오나 옷이 나오나?
예수 믿어 뭐하려고? 믿으려면 너나 잘 믿어. 나는 예수하고 볼일이 없어. 예수 믿는 것에 대하여 아주 매우 대단히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예수 믿기 전에 똑같은 말을 했다. 믿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다. 이 편견도 편견이라는 믿음에 속한다. 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아니다.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들으나 마나 나는 예수도 필요 없고, 교회도 싫다고 했다. 그렇게 부정적일 수가 없었다. 부정적이라는 믿음의 확신에 가득차 있어서 교회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문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Do you believe in Jesus, you get rice cakes or clothes? Jesus, believe me. What are you doing? I trust you to believe. I have nothing to do with Jesus. It is the story of people who speak very, very, very negatively about what they believe in Jesus. This story is not about others, but about myself. I said the same thing before I believed him. There was a negative bias against those who believed. This prejudice also belongs to the belief that it is prejudice. I am not about Christianity. I didn't even have to hear it. I said I don't need Jesus, and I don't like the church It couldn't be so negative. Filled with the conviction of the faith of negativity, there was not a shred of door to get close to the church.

이랬던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이것이 신비다. 내 인생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로 들어올 수 있었던 문틈은 내 인생이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암담한 시절에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고 잡아본 것이 절박한 기도였다. 향방이 없는 기도 가운데 막연하게 부르짖은 그 이름. 하나님의 이름 예수.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어두운 밤길에 빛으로 임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불러본 그 이름이 내 인생의 빛으로 다가왔다. 밑져야 본전이지 가 아닌 부르짖었더니 축복으로 변하였다. 

How did I come to believe in Jesus when I did this? This is the mystery. My life was the darkest time of my life when I was able to come into the church, the community of Jesus believers. The last time I caught him in the dark was a desperate attempt. The name vaguely called in the midst of a prayer without a direction. The name of God Jesus. Jesus Christ lighted the dark night road of my life. The name I called when I saw nothing came to light in my life. He cried out for mercy, not for nothing.

아니 갈 데가 없었으니 기도가 되었다. 의심덩어리였던 나에게 더 이상 의심을 할 의지도 없이 한 번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해보자 한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응답을 하셨고, 나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을 얻었다. 이것은 혹시나 하고 부르짖어 하나님을 만난 나의 체험 사다. 아무도 나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때 교회 다니는 한 사람이 나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했다. 나는 그래 손해 볼 것은 없으니 한 번 속는 셈치고 믿어보자 한 것이 진짜 믿음의 길을 만난 것이었다. 

No, there was nowhere to go, so it was a prayer. For me, who had been a doubting man, once thought that it was the last time and called out the name of God. God answered the cry, and I was given life in the valley of death. This is my experience of meeting God just in case. When no one led me the way, a churchgoer led me to God. I had nothing to lose, so I was deceived and I met the real path of faith.

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빛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부활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메시야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다른 건 몰라도 체감 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생명의 떡이다. 교회 나가면 떡이 나오는 구나. 그렇지 먹을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떡도 나오고, 옷도 나오고, 인생의 길이 열리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기복이 아닌 아니 기복적이라 할지라도 좋다. 그런 기복적인 믿음을 통해서도 믿음의 문이 열린다. 또한 생활의 지혜를 얻는 복이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길이 생기니 이것이 예수 이름으로 먹고사는 것이다.  

I'm a road. I'm a life. I'm a light. I'm the truth. I am resurrected. I am the Son of God. I'm Messi. I am the bread of life. It's life's cake that comes as a sensual enemy, if you don't know anything else. You get rice cake when you go to church. That's right. There's something to eat. When I believed in Jesus, I found rice cakes, clothes, and a way of life open. This is a blessing. It's okay to say that it's not an ups and downs. Such an unyielding belief opens the door to faith. There is also the blessing of gaining the wisdom of life. When you approach him, you will find a way for him to supply everything, and this is what you eat in the name of Jesus.


-
"나도 믿음을 가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 때 아래 "예수향기교회"를 클릭하세요.
When you feel like "I want to have faith too," click on "Jesus Hyanggi Church" below.

예수향기교회
네이버카페 예수향기교회
https://cafe.naver.com/churcha

참고: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를 사용하였습니다.
Note: Translating Korean into English used Naver translator Papago.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월호 텐트 쓰리섬 사랑과 위로의 성행위 ', 유족과 자원봉사녀의 성행위 진실과 416연대 심층보도_뉴스플러스

1. 세월호 쓰리섬 성행위 잊지 말아주세요! 아이들의 죽음을 팔아서 이권을 취하는 이들의 정체를 반드시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쉬쉬하고 숨긴 이들 분노를 넘어 치가 떨리는 일이다. 세월호 천막 불륜 난리났다!!! (박완석 문화부장) / 신의한수 세월호 텐트 안에서 사랑과 위로의 성행위| 성적자기 결정권 이은택] 광화문 세월호 농성 옆에서 xx했다는게 진짜면 ▶ https://www.youtube.com/watch?v=u7Uux9W_Wi4 --- 2. 세월호광장 텐트에서 유족과 자원봉사녀의 성행위|진실과 416연대<심층보도> 아침7시 종합뉴스|(심층보도) 세월호 천막 2+1 성행위 논란 아래를 사진을 클릭하세요!!! 세월호광장에서 일어난 세 남녀의 추문의 진실과 416연대 왜 세 남녀 대신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광장을 떠나야 했는가 2018년 05월 23일 (수) 17:42:25 [조회수 : 66967] 뉴스플러스 press1@news-plus.co.kr 2016년 4월 304명, 특히 250명의 꿈많은 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며 광화문광장에 모여든 자원봉사와 활동가들이 상당수 씁쓸하게 광장을 떠났다. 그들은 왜 떠났을까.  416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돼 1만명 넘는 국민 참여와 모금으로 수십억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재단까지 설립됐지만 그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열성적인 자원봉사를 하며 팽목항 지킴이로 유명해진 00 삼촌 김 모 자원봉사자는 한국이 싫다며...

[김대응 시인] 월간 문학세계 초대시 "시작되는 곳" 2025년 4월호 게재시

 

주사파가 점령한 대한민국_국민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_김문수칼럼

국가위기의 정체를 바로 알고 국민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저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2번 제적되고 25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7년 동안 공장생활하면서 노동조합위원장을 2년 동안 했습니다. 감옥에 두 번가서 2년5개월 동안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김일성주의자, 주사파학생들 수백 명과 만나서 토론도 많이 하고 함께 생활도 했습니다. 광주교도소에서 남파간첩, 공작원, 국내간첩, 재일교포간첩, 100여명과 함께 1년 동안 살았습니다. 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주의에 심취하여 공부하고 공산혁명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저는 공산혁명을 꿈꾸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비밀지하혁명 조직 생활도 10여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집권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운동권 출신 대부분과 함께 활동하고 같은 시대를 꿈꾸고 투쟁해 왔습니다. 제가 50년 간 겪어왔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종북 주사파와 좌파 연합에 넘어갔다고 판단됩니다. 1. 지금은 주사파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았습니다. 6.25 전쟁 휴전 이후 우리 국민 대부분은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해왔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공산치하에서 살아봤던 이북 피난민의 체험과 해방 이후 빨갱이들의 폭동과 6.25 전쟁기의 만행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좌익 경험이 있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 등 김일성의 남조선혁명노선을 따르는 지하혁명당 활동이 끊임없이 계속 시도됐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던 중 198년 광주사태를 겪으며, 학생운동과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은 피의 학살과 전두환의 집권이 미국의 묵인 아래 자행됐다며, 미국문화원에 방화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하며, 급속히 반비 친북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대남방송을 들으며 정리한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대표적인 주사파 운동권 문건입니다. 신군부의 12.12쿠데타와 광주사태, 그리고 민주화의...